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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통곡 후기

【의정부점】9개월의 기적, 기적ing~-알콩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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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통곡 작성일19-03-03 17:15 조회8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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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의 기적, 기적ing~

 

몇 일전 아이통곡 샘에게 놀러갔다가 “하나씨~하나씨도 체험 후기 써봐요 쓸 얘기가 아주 많을텐데~”

전 “그죠 저같은 사람 전국에 몇 안되겠죠?”

아이통곡 샘 “하나씨 좀 고생했어요? 잘써바요~”

글재주 별로 없는 내가 그 말을 듣고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컴앞에 앉았다.. 도전!!!!

 

2011년 후덥지근한 6월 태명은 알콩이, 주말부부인 나는 “알콩아 어서 빨리 만나자 목요일 날 진통하고 금요일 날 만나자~” 노래를 불렀다. 그래야 하루라도 신랑이 더 같이 있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그냥 그때까지 만해도 그냥 아가를 낳으면 막연히 잘 키울 수 있을거라 애기가 예쁘기만 하고 모유도 친정엄마 얘기처럼 팡팡 쏟아질 줄 알았다.

임신 중 출 퇴근 길에 아이통곡 간판을 보며 젖몸살이오면 아~이런 곳이 있으니 와봐야지~막연히 그렇게만 생각했으니,, 산전관리 생각도 못했던 나는 그렇게 출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알콩이~ 양수 터지고 유도 분만해야하는 상황이 수요일에 찾아왔다. 그래도 우리 알콩이 엄마말대로 아빠 볼 때 태어나겠구나 즐거워했던 건 잠시,,, 이제부터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다 생각들 정도의 나날들이 다가왔으니,,,

 

3,96키로의 우량아 아들~ 자궁경부를 다 찢고 과다출혈에 수혈도 받았다. 출산까지는 나보다 더 힘들게 낳은 엄마들도 많으니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첫 수유는 모자동실이 아닌 병원에서 출산해서 소변 줄을 꼽고 있던 나는 수유도 바로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첫 수유 그 감격 출산 했을 때의 감격도 감격이지만 첫 수유 때 감격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힘들어도 수유를 더 포기할 수 없었던 거였을까?

아이를 낳으며 또한 한 가지를 더 나았으니 “치질” 산부인과선생님이 괜찮아 질거라고 했지만 괜찮아지지 않았고 다시 수술.. 결국 유축은 했지만.. 젖이 말라가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간 아이통곡~

 

이제 여기서 부터가 내 본격적인 모유수유와의 긴 사투시작~!

다른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당연히 아이를 낳고 모유를 먹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일인 이였던 나~

아이를 낳고 정확히 한 달 아이통곡을 찾았다.

“젖량을 늘릴 수 있을까요?” 이 첫마디 난 그때 정말 애절했다. 모유수유는 하고 싶었기에..

아이는 이미 젖병에 익숙해져 있었고 폭풍식욕으로 다른 아이 40미리 먹을 때 두배는 기본 100미리까지 흡입하는... 그런 저력을 보였으니 내 찌찌는 절대 거부상태였다.

주변에서는 “안 나오는데 굳이 아픈 몸으로 멀 먹이려고 하냐! 그냥 분유 먹여라...” “분유도 잘 나온다 마사지 비싼 돈으로 받지 말고 좋은 분유 먹이면 된다”

이런 말을 들으며 난 반대로 이렇게 생각했다.

모유만큼 좋은 건 없고 난 비싼 분유 값을 마사지로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진짜 안하고 후회하는 것 보단 후회하더라도 노력하고 후회하자 하는 맘으로 딱 100일까지만 노력하자~생각하고 2-3시간에 한 번씩 유축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일지도 써가며 분유 먹은 양과 모유 유축 한 것, 체크하고~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에 갔겠네,, 적어도 서울대는 갔겠네,, 요래가며,,

유축을 해봐야 소용도 없는 송알송알 맺히기만 하는 내 가슴상태 그때 좌절감은 정말 상상 이상였다.

허브티, 모유 늘리는 소아과약 처방받고, 별것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아이통곡 샘도 내가 포기했으면 생각 하셨을 거다.. 아마도,, ㅋㅋ

일주일에 2-3번씩 거의 8개월 가까이를 아이통곡 샘과 같이 고생했었다.

유축을 40분 동안 양쪽을 하는데 첨에는 500원 동전만큼 그러더니 마사지를 받고 이제 유축 병에 도넛 모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아기는 손에서 떨어지질 않고 나는 왜 남들 다하는 모유수유도 안되나.. 부족한 엄마인게 나 스스로에게 원망스럽고 한스러운 생각만 들어서 매일 매일이 우울했다. 내가 무슨 젖소도 아니고 매일 유축기를 들이대고 유축하느라 잡고 있는 손목도 끊어질 듯 많이 아프고 저렸다.

마사지를 받은지 한 달 가량되자 유축하면 30미리정도 되기 시작했다.

“그래 간식으로라도 모아서 먹이자. 100일까지 목표는 100미리와 직수~ 가능할거야~”

슬슬 힘을 내고 박차를 가해서 애기를 들쳐 업고 유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30미리에서 정체기....

먹고 싶은 것 못 먹어가며 다 가려 먹고 노력하는데..

잠도 못자고 유축하며 또 애기업고 유축 하는데...

나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던 내 몸은 젖량이 더 늘지않고 정지!!!

거기에 젖량이 적다고 뭉치는게 안 찾아오는 건 아니였다. 아기가 빨아주지 못하기에 고여서 남아있는 젖이 이곳저곳 뭉쳐버리고 아프고 매주 2번에서 많게는 3번 마사지를 받으며 아이통곡 샘의 조언과 위로를 받으면서 마음을 추스렸다.

100일의 기적은 나에게도 찾아오겠지... 샘도 이렇게 노력하는데 좋아 질 거니까 힘내라고 용기를 주셨다. 용기도 잠깐.. 위기는 정말 빨리도 찾아왔다...

 

첫 번째 위기!!! 아이 50일쯤 감기로 병원에 갔는데 사시 끼가 있다며 전문병원에 가 보는게 어떻겠냐는 의사선생님에 말에 또 한 번 좌절을 맛보게 됐다. 감기인 것도 모유를 제대로 못 먹어서 면역성이 약해서 인가 보통 100일까지는 아기들이 잘 안 아픈 다던데.. 이렇게 나 스스로를 또 다시 원망하고 질책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기는 별 이상 없었고 다시 파이팅하기 시작했다..

다시 젖량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 50미리 돌파!!! 아주 경축 할 일이였다. 그런데...

 

두 번째 위기!!! 우리 친정 부모님의 불화 ㅜㅜ 또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시작... 이혼...

난 힘든 상황에 또 이런 상황까지 오는 건가... 이게 아기 80일 쯤 경... 머가 이리도 쉽게 되는게 없는지.. 또다시 젖량은 급격히 줄어서 30미리로 추락...

다시금 나 자신을 추스르고 부모님의 인생도 중요하다 생각하고 맘을 잡기 시작했다.

이때가 제일 모유수유를 포기하고 싶은 때였던 것 같다.

아기는 예민하고 손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저녁에도 한 두 시간에 한 번씩 깨고 힘들게 자라줬지만 다행히도 아픈 곳은 없었다. 엄마의 노력을 알아 준건지.. 감사할 따름이지만.. 좀처럼 줄어든 젖량은 늘지 않았다.. 그만큼 나한테 큰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는 100일의 기적은 오지 않았다. 늘 예민하고 통잠은 꿈 꿀 수도 없고 젖량 직수... 그어떤 것 하나도 기적은 오지 않았다...

 

세 번째 위기!!!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우리 집은 의정부~ 시어머님의 장지는 전라도 광주.

경황없이 새벽같이 아기 데리고 유축기 챙기고 미친 듯이 내려갔다.. 마음도 아프고 내 가슴도 돌덩이처럼 아프고 직접수유가 안 되는 나는 장지에서 유축을 할 수 없어 또 한번의 위기가 왔다. 그날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다. 돌덩이가 된 내 가슴을 가지고 난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때는 내 가슴 아픈 것도 그렇지만 신랑을 보며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난 꾸준히 관리를 받았고 8개월간의 긴 여정을 관리를 받으며 발육속도가 빠른 우리아기는 8개월에 걸음마를 하기 시작해서 업고 유축하기도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는 직접 안 먹으면 방법이 없다 생각하고 끊어야지 마음먹은 그 순간 울 아들 내 생각을 알았는지 너무 신기하게도 9개월 만에 직접수유를 하기 시작했다. 난 9개월만에 유축기를 뗏다...

너무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꿈과 같은 일이다..

발을 동동 구르며 유축해야 하는데.. 아니면 또 뭉치는데...이러면서 아이를 업고 힘에 겨워 투덜거리던 나에게.. 유축한 깔대기를 삶으며 투덜거리고 힘들어했던 나에게..나에게는 기적이온 것이다..

유축과 분유 수유 같이 해본 엄마들은 알겠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몸이 너무 고되고 힘들었다 다시 그렇게 하라면 글쎄..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난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믿는다..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고 지금은 울 아들이 얼마나 엄마찌찌를 좋아하며 달려드는지 그럴 때마다.. 행복하다. 그 후 난 계속 직수를 하고 있다. 지금 2012년 8월 29일 수요일까지.. 아니 앞으로도 진행형이다. 100일만 노력해보자던 내가 100일 노력 한 것이 아까워서 좀 더 하자 좀 더 노력해보자 하며 9개월을 잘 버텼더니 나에게 선물과 같은 직접수유가 가능했다.

그리고 난 거의 모유수유 전도사가 됐다.. 여기저기서 물어보면 피토하며 설명해준다.. 거의 반전문가가 된 듯한..

 

후기를 쓰면서 참 주마등같은 그 시간들이 내 머리 속에 스치고 지나간다..

모유수유의 중요성은 말하지 않아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정보의 홍수 시대이니까. 하지만.. 안다고 다 실천하고 성공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모유수유는 쉽게 성공하는 엄마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분명 나와 같은 이런 감동과 환희는 없을 것이다. 노력했기에 힘에 부치게 노력했기에 난 많은걸 느낄 수 있었고 감사한 마음은 더욱 배가 됐다고 생각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감사할 사람들이 많다. 내가 이렇게 노력할 수 있었던 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물론 있었지만 용기를 북돋아 준 많은 지인과 무엇보다 울신랑의 많은 서포터 덕분 이였고 너무 감사하고 사랑한다. 최고의 신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정부 아이통곡 샘 너무 감사드린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의정부 박은영샘 아녔음 전 모유 수유 못 했을 거예요 감사해요 덕분에 울 아들 건강하게 튼튼하게 잘자란 것 같아요^^”

 

 

최고로많이 유축했던 신기록 사진과

고맙게 잘자라 준 기특한 울아들 자랑도 좀해봅니다^^(사진이안올라간것같아서 원본파일첨부합니다)

알콩맘 
201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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