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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통곡 후기

단유라는 벼랑 끝에서 저를 훅~ 낚아채신 동래.연산점 고원장님 감사합니다.- 가민서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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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통곡 작성일19-03-03 16:08 조회9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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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살의 늦은결혼, 1년후 임신, 임신31주4일 조산기가 왔고 입원을 했다. 조산방지제인 라보파의 부작용으로 얼굴, 손, 발 등은 터질듯이 붓고, 깨질듯한 두통으로 얼굴은 모세혈관이 다 터져 붉고 맥막이 빨라지고 호흡까지 곤란하기도 하였으나 우리아기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30일을 보낸 후 퇴원했다.


38주에 이슬이 비쳤으나 2주가 되도록 진통이 오지않았고, 아기가 탯줄까지 감고 있어 맥박수가 느려져 유도분만을 했고 13시간만에 예쁜 우리딸을 만났다.

이 나이에 자연분만을 하다니 스스로 대견했고 그때 까지만해도 고생끝 행복시작인 줄 알았다.

인간이 한치 앞을 못보기 때문에 밥도 먹고, 행복해하고 아무생각없이 자기도 하고 그런가 보다.

가슴 한쪽이 편평 유두라 아기가 빨지 못했고 한쪽가슴도 병원에서는 젖이 돌지 않았다.

조리원에서 유방마사지를 받고 조금씩 젖이 돌기 시작했는데 젖양을 늘리려면 두세시간 간격으로 유축기로 젖을 짜라고 했다. 이말을 듣고 나는 너무 열심히 유축을 해버렸다.(나의 첫번째 삽질) 한번도 안 빠뜨리고 했고 마지막 한방울도 더 짜려고 쥐어짰다. 젖양은 쭉쭉 늘어났고, 주변엄마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아기가 유두가 짧아서 못빨고 울어대고, 젖꼭지도 다 해어져서 넘 따갑고 쓰려 계속 유축해서 먹였다.

조리원에서 나와서도 계속 유축했고, 직수를 하기 위해 아기눈치를 봐가며 쭈쭈도 달고, 실리콘 젖꼭지도 달아보고 했으나 그 어린것이 싫다고 죽는다고 고함을 쳐대니 매번 KO패였다. 아기는 찔끔찔끔 자주 먹는 편이고, 나의 젖양은 쌍둥이가 먹어도 남아돌 양이었다.

한쪽만 짜도 엔젤젖병 꽉 채워 한병 반이 나왔으니.

짠지 두시간만 지나면 가슴이 퉁퉁 불어왔고 나는 기계적으로 짰고, 스무개 가까이 되는 젖병은 돌아서면 젖으로 가득차 빈병찾느라 헤매고, 그병들 소독하는 것도 일이고, 팩에 넣어 얼리는 것도 한계가 있지 어느순간 부터 사골국물보다 더 찐한 내 육수를 하수구에 하루에 몇병이고 버렸다. 양 맞춰 주루룩 10개씩 비닐팩에 넣어 얼리는 것도 그 당시 나에겐 엄청난 일과였다. 낮엔 그렇다고 쳐도 밤에도 2시간 간격으로 가슴이 아프고 옷이 다 젖어 깨였고, 정적이 무서워 YTN뉴스를 틀어놓고 멍하니 있기도 하고, 내가 사람인가? 소인가? 도대체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라고 젖을 먹여야 하나? 하는 회의감으로 우울감에 젖어갔다. 그래도 아침에 아기 얼굴을 보면 또 힘든 일상을 이겨냈다.


몸과 맘이 지쳐갔다. 열심히 유축해도 완전히 젖을 짜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시댁에 잠시가도 유축기를 들고가야 했고, 저거 없이 어찌 사나 싶었지만 지금은 내꺼라면 당장 깨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저 물건땜시 내가 이렇게 고생했다 싶어서...

첨에 온 젖몸살은 젖몸살인지도 모르고 내과에 가서 링겔을 맞았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만에 또 몸살이 왔다. 이게 혹시 젖몸살인가해서 출산한 병원에 있는 외과에 갔다. 대수롭지 않게 약간 유선염이 약간왔으니 약을 먹으면 나을거라 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방법을 달리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인터넷을 뒤졌고 아이통곡을 찾았다.

그리고 부산 동래,연제점을 검색하고 전화로 예약하고 방문했다.

한시간이상 짜내신 후 원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젖양이 너무 많고, 유관도 잘 막힐 것 같고 가슴이 참 쉽지않은 가슴이라고 고생좀 할 것 같은데 하시면서, 힘들어도 유축을 하지 말고 직수를 하고 힘들면 다시 오라고 하셨다. 마사지 받은 내 가슴은 날아갈 듯 가벼웠고 기분마저 상쾌했다.

지나고 보면 그말이 참 앞날의 고생을 내다보신 말이었다.

원장님은 경제적인 부담을 줄까봐 있는 그대로 말씀을 하지 못했던 것이고, 나는 그냥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원장님, 때론 너무 양심적인 행동에 저같이 본의 아니게 피해보는 사람이 생깁니다. ㅎㅎ

그 이후로도 계속 젖몸살은 찾아왔고, 편평유두인 가슴은 물리고 나면 유두도 아팠지만 가슴속 조직이 쓰라리고 너무너무 아파서 아기가 한번 빨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숨이 턱턱 막혔다. 한편으론 아기가 좀 오래 먹었음 하는 정신적인바램, 또 한편으론 그냥 그만 먹어줬으면 하는 육체적인 바램이 교차했다.

밤새도록 가슴속 조직이 심한 타박상을 입어 욱신욱신 아픈 느낌이랄까? 너무 쓰라려 똑바로 누워잘 수도 없었고 고통으로 잠도 오지않아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 하며 잠시 눈붙이고 아기울면 젖주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인터넷을 뒤져서 한방재료를 이용한 팩도 수십만원어치 주문해서 온가슴에 랩을 칭칭감고 온갖 옷을 버려가며 하루에 팩을 4~5번까지 했어도 젖양도 잘 줄지 않고, 딱딱하게 뭉쳐진게 풀리질 않았다.

또 답답해서 출산한 병원의 외과를 다시 갔으나, 역시나 대수롭지 않게 본인은 본인이 젤 힘들거라 생각하지만 객관적으로 볼때 별거 아니라고 1주일치 약을 주며 돌려보냈다. 초음파라도 해달라고 해도 별거 없으니 할 필요가 없을것 같다고 해주지도 않았다.

내가 엄살을 부리는가? 생각하며 참을성 없는 나를 나무랐다.

그 와중에 아기는 영아산통으로 밤마다 숨이 넘어가도록 울어대서 응급실도 가고, 매일매일 울음을 달래기 위해 차를 태워 밖에서 재워서 들어가는 상황도 함께 연출되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다른 산모들은 나처럼 이렇게 힘들지 않은 것 같은데 정말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문득 유방외과를 가면 좀 더 잘알지 않을까해서 갔고(이것이 나의 두번째 삽질이었다) 초음파 결과 너무 심하게 유선염이 와서 조직이 굳어버렸다고 하면서 저 침대에 누워봐라고 하더니 굵은 대바늘로 사정없이 문제의 그 가슴을 찔러서 쭈욱 빼냈다. 나는 그 와중에 졸도를 할 지경이었다. 쇼크를 받았는지 주사바늘 찔린 가슴보다 머리가 더 깨질듯이 아팠고 나의 의지로 멈출수 없이 눈물이 줄줄줄 흘러내렸다. 유방암 환자가 줄지은 그 병원에서 유선염이니 모유수유니 하는 것은 운운할 장소가 아니었나 보다.

처치후 의사 선생님은 두말없이 젖을 끊으라고 했다.

나는 일단은 알았다(속으로는 동의할수 없었다)고 하고 혼미한 상태로 약을 받아서 왔다. 그 약은 아기에게 젖을 줄수 없는 약이었다. 집에와서 울아가를 보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이제 젖을 못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목이 메였다. 내 가슴의 뚫린 주사바늘 구멍으로는 2박3일동안 젖과 피가 섞여서 흘러내렸다.

온 가족들이 더이상 고생하는것 못보겠다고 당장 젖끊고 분유 먹이라고, 다른 아기들은 아예 첨부터 분유 먹고도 잘 큰다고 난리가 아닌 난리가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기가 안되었다. 내가 나이가 많고 피부도 예민하고 아빠도 피부가 약해서, 우리아기가 면역력이 떨어져 자주 아프고 아토피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좀더 고생해도 내 선에서 해줄 수 있는거는 다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1년밖에 같이 있어주지 못하고, 모유수유를 위해 휴직까지 냈는데 내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 수유를 중단할 수가 없었다.

밤새 고민끝에 고원장님이 다시 생각났고, 왠지 해결방법을 가지고 계실 것 같았다.

완전히 돌아온 탕자가 되었다. 돌고 돌아 만신창이가 되어 다시 돌아간 셈이었다. 주사바늘 찔린 부분은 돌덩이가 되어버렸다.

긴급상황이라 며칠을 내리 마사지를 받았는데 그 와중에 조직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셨는지 고원장님께서 다른 병원을 추천해주시며 진찰부터 받아보라고 하셨다.

결론은 입원치료 후 한달 가량 항생제치료를 했다. 그래도 수유가 가능하다는 위로가 있어서 꾹 참고 견뎠다. 입원기간 동안 수유를 계속하기 위해 친정부모님이 해운대에서 화명동까지 우리아기를 출퇴근을 시켰다.수유를 위해 1인실에 있었으나 그 시기가 우리아기 영아산통의 절정기여서 도저히 병원에서 재울 수가 없었다. 병원이 떠나갈까봐...

정말 그때가 절정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대로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아기는 아기대로 저녁만 되면 어김없이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우는데 나도 울고 부모님도 우시고....

백일은 다가오는데 아기나 나나 아질 기미는 보이질 않고 과연 그 찬란한 백일의 기적이 나에게도 올까 싶었다. 100일날도 징하게 울어댔고, 저녁식사를 하러간 식당에서도 교대로 밥을 먹었다. 어머니 칠순 날에도 까르르 넘어가며 내 손에서 떠나질 않아 우리부부는 부페식당의 음식이 뭐가 있었는지도 구경도 못했고, 나는 그 담날 순수한 몸살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울아기는 120일의 기적이었다. 4개월 지나니 밤에 우는게 확연히 나아졌다.

퇴원 및 약물치료 (항생제 복용으로 아기에게 영향이 아무래도 갈 것 같아 맘 졸이고 있었으나, 소는 나보다 항생제를 더 많이 먹는다는 고원장님의 위로로 맘 편히 계속 수유를 했다)로 유선염은 많이 나아졌으나, 근본적인 젖량이 줄지를 않아서 재발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인장을 바르면 젖몸살에 좋다는 소리에 가시에 찔려가며 붙이고, 양배추가 시래기가 되도록 붙이고  ,엿기름을 찐하게 담궜던 물을 1주일을 들이마셔도 젖량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팔로델을 5일치 먹었다. 그러는 동안 아기에게 수유를 하지 못했다. 유축해 놓은 젖이 이때 진가를 보였다. 하수구에 버린것들이 너무너무 생각났다.

보통사람은 2일치만 먹어도 확 주는데 나의 경우엔 좀 줄긴했으나, 확 줄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그러고 나서 또 수유를 시작했다.

하루하루 가슴상태를 조마조마하며 견디는데, 또 다른 증상이 나타났다. 찌릿하고 날카롭게 한줄로 스악~스치는 통증...불안해하며 또 병원을 갔다. 나도 이번에 또 탈이 나면 그만둬야지 하는 비장한 각오로 갔다.의사 선생님께서 이스트감염이 온것 같다고 곤란한 표정으로 말씀을 하셨다. 내가 왜 그런게 걸리냐고 하니 산모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올수 도 있다고 하시며 말을 잇지 못하시길래 내가 먼저 그만 먹이겠다고 말씀드리고 맘 편하게 해드리고 집에왔다. 과감하게 분유도 넉넉히 주문하고 이제는 나도 내 몸을 챙겨야지 싶었다. 유축할때 가슴을 주무르고 아기 안고 하다 보니 손가락 마디마디가 가만히 있어도 아프고 구부릴때마다 통증이 오고 잘 접히지도 않았다. 이런식으로 골병이 들어가나 싶기도 하고, 내가 내 상태도 냉정히 판단하지 못하고 남들따라 나도 해야지하는 식으로 끝까지 버텨보려고 만용을 부리는 것 같았다. 몸무게도 임신전보다 2키로그램 더 빠졌다.

단유를 95%이상 맘먹고 마지막으로 아이통곡 원장님께 전화를 했다. 고원장님은 고생한게 너무 안타깝고 아깝다고 이스트감염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며, 나의 상태가 이스트감염은 아니었다면서 한번만  더 참고 1주일만 더 버텨보라고 하셨다.- 그 충고 너무 감사합니다.-

그 말씀 하나에 오늘까지 완모를 하고 있다.

단유와 수유의 갈림길에서 결정적으로 원장님의 결단력있게 저를 확 이끌어 주셨다.

그 과정을 한줄로 요약했지만, 가슴은 퉁퉁불어 터져나갈 것 같고 기저부는 딱딱해오는 과정에서 유축하지 않고 견디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짜자 or 참자가 하루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안짜야 줄어든다, 안짜다가 또 유선염온다는 갈등으로 시간시간 견뎠다. 자다 새벽에 가슴이 아파 깨면 젖이 새서 옷은 다 젖어 있고, 그래도 유축기는 멀리하고 손으로 짰다. 얼마나 새벽마다 짜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젖비린내가 코앞에서 물씬 난다.

그러는 과정에서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았다. 아기도 4개월이 넘어가니 한번씩 바짝 먹어 젖을 비워주기도 했고, 홍삼이 젖을 서서히 줄여준다는 것을 듣고 홍삼도 복용중이다.

요즘은 새벽에 일어나서 못견디겠는 날과, 아기가 먹는걸 한번씩 건너 뛰어 많이 견디기 힘들때만 잠시 짠다. 지금도 완전히 편하진 않지만 그래도 살 것 같다.

나의 이런 고생의 원인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노산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아기를 늦게 낳은 것이다. 아기에게도 참 미안한데 낳기 전에는 몰랐다. 요즘은 초등학생 어린 조카에게도 너무 늦지 않게 결혼해서 아기낳으라고 한다. 늦게 아기 낳으면 고모처럼 고생한다고..ㅎㅎ

친구들은 다 늦게 유전이라도 터졌냐고 왜 그리 양이 많으냐, 산모가 나이가 많아 면역력이 없는데 모유수유를 하면 뭐하냐며 단유를 권유했지만 우리아기가 내 품에 안겨 젖을 먹다가 나를 보며 방긋 웃을때 정말이지 온몸이 나른해지며 내 속에서 솟아나는 그 충만한 느낌,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그 느낌이 든다.

분유를 먹였으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이감정! 포기 하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고 잘한 것 같다.

하나를 낳고 보니 우리 아기가 너무 외로울 것 같고 둘째는 왠지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우리아기에게 가장 큰 선물은 동생이라고 했던 문구가 기억나  내 소중한 아기에게 정말 큰 선물을 하고 싶다. 이첫째 때 없었던 이런 경험들이 피와살이 되어 나를 도와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내년 늦가을쯤에 둘째를 낳아야지 하는 욕심을 내어본다.

가민서맘 
201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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