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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통곡 후기

(체험수기) 꿀 보다 달콤하고 별 빛 보다 고운 추억 하나-이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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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통곡 작성일19-03-03 15:49 조회6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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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 낳을 때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어."

 

 

  출산휴가 직전 직장선배에게서 당황하지 말라며 미리 듣게 된 젖몸살과 유선염에 대한 정보였다.

아직 아기도 낳아보지 못한 상황에서 그 고통의 정도를 어찌 가늠할 수 있었을까?

또 모두가 겪는 아픔이 아니기에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고 기억에서 잊혀졌다.

 

  말할 수 없는 고통 뒤에 태어난 우리 공주님. 태어나자마자 젖을 물리니 반사적으로 오물거리며

젖을 빠는데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버렸다. 그렇게 처음 느낌을 마주한 뒤,

젖이 잘 도는지 지인들이 물어도 그 느낌이 뭔지를 모르겠어서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산후조리원으로 옮기던 날부터 젖이 불기 시작했다.

  조리를 했던 조리원이 모유수유를 원칙으로 하는 곳이었던지라 곳곳에

모유수유에 대한 정보가 도배돼 있었고 그 글들을 읽으면서 '무조건, 나도!!'라는 생각을 다지게 되었다.

밤에도 무조건 깨어 달라해 깨어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젖을 물고는 곧 다시 고운 표정으로

잠드는 아기를 보고 있으면 첫 젖 물림에 몇 배가 되는 흐뭇한 감정이 스멀스멀 솟아오르고는 했다.

  조리원 조리를 시작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아기 대변이 초록을 띤다며 물기가 많은 앞 젖만 먹어

그렇다며 젖을 짜내고 먹이란다. 유축방법에 대해 물어도 기계 사용법만 알려줄 뿐 얼마나

짜야하는지 물어도 정확히 답을 해주지 않았다. 아기한테 무슨 큰 일이 난 것처럼 걱정이 돼

주어진 정보가 없으니 나오는 모든 양을 짜고 물리고 짜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처음엔 양이 30~40cc 정도더니 순식간에 작은 젖병 두 개를 써야할 정도로 양이 많아졌다.

젖은 자꾸만 커지고.. 하지만 그 때만해도 조리원 수유실에서 엄마들이 서로의 양을 말하며

모유수유에 대한 대화를 할 때 유축양이 많은 것이 참 자랑스럽고 기쁘기만 했었다.

  젖이 점점 불기만 하니 견디기가 힘들어 조리원 근처에 있었던 곳에서 마사지를 여러 차례 받았다.

젖양이 너무 많아 힘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방법이 없단다.

그저 열심히 물리고 마사지를 받는 방법 밖에는.. '전문가라면서 그게 말이 돼나?

마사지 한 번에 돈이 얼만데 다른 방법 하나 없이 견디라는게..'

그러면서 알려준 방법이 아기한테 먹이고 짜내고 냉팩을 하란다.

조리원을 나오면서 알아낸 방법이 겨우 그 방법이었다.

 

  2주 조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님들 도움을 받으면서 내 일과는

늘 젖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었다. 먹이고, 짜고, 냉팩하고,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울면

일어나 먹이고, 짜고, 냉팩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겠고 손목도 아프고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모유수유를 그만두고 싶어질 때쯤 오른쪽 가슴에 탈이 단단히 났는지 아기가 물기만 하면 죽을 것 같고

악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너무너무너무 아프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오른쪽 가슴은 물리지를 못하고 계속 왼쪽 가슴만 물리게 되었다.

젖의 원리를 모르는 나로선 그 뒤 찾아 올 고통을 짐작할 수도 없었다.

  하루가 지나자 오른쪽 가슴에서 뜨겁게 열이 나기 시작하고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3법칙 먹이고, 짜고, 냉팩하고는 절대 거르지 않았다.

계속해서 짜는걸 원하지 않으셨던 친정어머니는 냉동실에 쌓여가는 모유팩을 보면서 한숨만 지으시고

쉬어야 할 때 가슴 때문에 절절매는 모습에 가슴이 소 젖 늘어진 것 같다며 젖을 먹이며 우는 내가

안쓰러워 흐느끼시던 그 날,  출산보다 더 하다는 그 고통이 내게 찾아왔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커다란 고통, 너무 힘들어하니 남편이 머리를 쓸어올려주는

그 잠깐의 스침도 참아낼 수가 없었다.

  출산한 며느리 산가해주신다고 올라오신 시어머님, 친정엄마, 남편 다 어쩔줄을 몰라하며

눈물바람을 하다가 병원에 가면 뾰족한 수가 나올 듯 하여 산부인과를 찾았다.

별로 방법이 없다시며 약을 처방해 주시면서 아이통곡이라고 병원 뒤에 있는 통곡마사지를

엄마들이 많이 받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우선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마사지는 안 될 것 같아 약국을 찾았으나 일요일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라

문을 연 약국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을 구하지 못해 못 먹은게 천만다행이었던 것 같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음에 아이통곡으로 전화를 걸어보자 해 전화를 걸었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전화를 받아주신 원장님. 젖양이 너무 많아 숨도 못 쉴 정도로 힘이 들어

전화를 드렸다니 양배추요법과 괜찮으니 진통제를 먹으라고 일러주시며

다음날 가장 빠른 시간으로 예약을 잡아주셨다. 지옥 같은 밤이 얼른 지나가길 바라면서

그래도 조금만 더 참으면 살 길이 생긴다 생각하니 깜빡깜빡 졸기도 하면서 견딜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젖으로 다 젖어버린 옷만 겨우, 진짜 겨우 갈아입고 출근하는 남편 부축을 받아

원장님을 찾아 갔다. 자리를 쉽게 못 뜨는 남편을 뒤로 한 채 주시는 진통제를 한 알 받아먹고

침대에 누웠다. 유선염에 더해 막혀버린 유관이 고통의 원인이란다.

신음이 계속해서 나는 두 시간 가까이 되는 마사지를 받고 나니

신기하게도 극심한 고통은 사라졌다. 생명의 은인이라고 밖엔 원장님을 설명하지 못하겠다.

  마사지 받는 동안 젖양이 너무 많다며 뭐든 적당한 게 좋은 거라시며 우선 당장 양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알려주신 방법 중에 당장 필요한 알로에와 엿기름, 양배추가 집에 없는 통에

그 이른 시간 열지도 않은 마트까지 택시를 타고 가 기다렸다가 마트로 들어갔다.

새어버린 젖을 안보이게 하려고 양 팔로 가슴을 감싸 안고 초췌하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마트 안을 돌아다니는 것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보고..

몸 회복이 더디게 돼 제대로 걷지도 못해 어기적어기적 걷고, 브레지어도 하지 않아 늘어진 가슴에

언뜻언뜻 보이는 젖 때문에 젖어 있는 옷을 보니 이상한 여자로 보였을 성도 싶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픈 장면이다.

 

  그 날부터 난 더 이상 젖을 짜지 않았고 양배추와 알로에를 가슴에 붙이며 지냈고

삭힌 엿기름과 홍삼을 먹기 시작했다. 당장에 젖이 줄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마사지를 몇 차례 더 받으면서 조금씩 편안해져 가고 있었다. 마사지를 받지 않으면

모유수유를 할 수 없는 건가 싶어 넌지시 원장님께 여쭸더니

"여기 계속 와야 될 것 같죠? 엄마처럼 쉴 새 없이 오던 엄마들이

어느 순간 보면 안 보인다고 걱정하지 마요."하신다. 또 더해 양도 풍부하고 질도 굉장히 좋으니

아기에게 이보다 좋은 음식이 어디있겠냐시며 모유를 하얀 피라고도 한다고 포기하지 말아보자고

용기가되는 말씀도 해주셨지만 완벽해진 편안함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말로 어느 순간 아이통곡을 찾지 않아도 되는 날이 내게도 왔고

좋은 젖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게 되었다.  모유수유를 오래 할 수 있는 것도 복이라더니

내겐 풍족한 젖은 있지만 수유의 복은 없나보다 하면서 한 달만 먹이고 말자 했던 것이

백일까지 이어지고 있었으니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출근, 젖을 짜내다 또 어려움이 닥칠까봐 제대로 된 유축법을 알기 위해 중간점검차

다시 원장님을 찾았고 오전, 오후 하루 두 번의 유축법을 자세히 알려주셨다.

이 때가 단유 전 원장님을 뵙게 된 마지막 날이다. 

 

  이 후 3개월간 직장에서 유축을 해 와 내가 없는 시간엔 시어머니께서 전 날 유축해 온 젖을

중탕해 두 번 수유를 하고 내가 있는 시간엔 아기가 물려고 할 때마다 젖을 물리며 편안하게

모유를 먹일 수 있었다. 물론 규칙적으로 유축을 하는 것이 눈치도 보이고 불편한 곳에 숨어

유축을 했어야 했고 제 때 짜지 않아 젖이 불어 아팠던 적도 있지만 내 젖을 먹고 날마다 자라고

방긋방긋 웃어주는 아기를 생각하면 그 정도 불편함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기간도 무사히 보내고

이 후 2달간의 방학 기간엔 다시 직접 수유를 했었다. 이렇게 모든 과정을 이겨내고 있으니

이제 돌 까지는 어떤 어려움도 없이 모유수유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정말 뿌듯하고 기뻤다.

 

  3월 다시 출근을 하면서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겼다. 그런데 이 때 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유축한 젖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골골대며 엄마만 기다리고 기다리고를

며칠하더니 아기가 병이 나버렸다. 밤새 나는 열 때문에 잠도 못자며 아기를 돌보니

내 몸에도 이상이 생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유축한 것은 먹지도 않고 버려지고

엄마젖만 물려는 아기에게 늦은 밤엔 빈 젖을 물리게 되는 때가 잦아졌다.

배고픈 아기는 젖이 나오질 않으니 악을 쓰며 울고 안되겠어서 정말 싫지만 분유를 먹이기도 했다.

두 번째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남편과 상의 끝에 욕심나는 모유수유도 하고 싶고

어린이집에 맡기기엔 아기가 너무 어린 것 같아 휴직을 하기로 했다.

 

  드디어 4월. 엄마가 매일매일 집에 있으니 아침마다 말똥말똥 '어? 어?'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기에게 원할 때마다 젖을 물릴 수 있어 우리 아기에게도 나에게도 참 행복이 찾아왔다.

그렇게 어떤 문제도 없이 돌기 지나고 13개월을 지났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쭈쭈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 재미있는 행동도 참 많이 했다. 물고 싶을 때면 어느 때고 옷자락을 들춰대기도 하고

양쪽 가슴을 다 내 주면 한 쪽은 물고 다른 한 쪽은 손으로 어찌나 사랑스럽게 만져주던지..

엄마 쭈쭈만을 예뻐해주고 소중하게 다뤄주는 것도 신기했다. 큰 눈을 내 눈과 마주치며

웃어주기도 하고 가슴에 코를 박고 파묻고 놀았던 그 때를 이제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아기가 많은 양의 밥을 먹지 않고 밤에도 젖을 더듬느라 잠을 깊게 자지를 못해 이제 단유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원장님에 전화를 드렸다. 단유 스케쥴을 설명 듣고 준비기간을 가져 아기를 준비시키라는

말씀을 들었다.

  키는 또래보다 크고 몸무게도 적당하고 모든 성장 발달에 있어 조화로운 발달을 보이고 있고

성격도 굉장히 명랑하고 밝고 늘 활기차고 씩씩하지만 평생 엄마 젖을 먹을 수는 없으니

정말 큰 마음을 먹었다. 그 날 바로 커다란 달력 하나를 뜯어 아기 눈높이에 붙여두고 설명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쭈쭈를 먹는 날엔 커다랗게 하트를 그려 표시를 해뒀다.

그리고 매일 아침 지난 날에 빨간색연필로 아기 손을 잡고 엑스를 그리게 했다.

이주일은 별 거부감 없이 잘 하더니 그 이후엔 달력을 찢으려고도 하고 색연필을 확 던져 버리기도 하고

달력을 보면서 고개를 흔들다 울기도 하면서 남은 기간을 보냈다.

 

  마지막 날, 마음이 어찌나 슬프던지 마지막 젖을 먹이면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억누르며

쭈쭈와 이제 영원히 이별하는 거야라는 말을 해줬다. 그렇게 잠들고 두 번 새벽에 깨어 심하게 우는 아기를

어르고 달래 재우고 아침을 맞았다. 방긋 웃는 얼굴로 다가오더니 옷 위로 보이는 가슴부분을 살짝 만지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조금 떨어져서 무릎을 굽히며 세 번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한 뒤

빠이빠이를 하고 장난감을 가지러 갔다. 아마도 계속해서 "14개월 동안 우리 아기 이렇게 클 수 있게 해준

쭈쭈한테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빠이빠이 하는 날이 이 날이야." 라고 말해줬던 것을 기억하는 듯 했다.

 

  하루가 지나고 아주 많이 아프진 않지만 돌 같이 된 가슴의 단유마사지를 시작했다.

속상한 마음을 또 자상하게 어루만져주시는 친절하고 고마운 엄마 같은 원장님이시다.

이 후 별다른 통증과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다.

 

 

  2011년 8월 26일 엄마 쭈쭈에서 독립한 예쁘고 귀한 우리 아기.

  젖양 많은 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이라는 말이 너무 듣기 싫어 누군가 그 말을 하면 화가 날 정도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가장 귀했던 축복 이었구나 라고 그 말을 인정할 정도로 네게 젖을 물리는 것이

말도 못하게 행복했단다. 엄마 젖을 물면서 따뜻함과 포근함을 배웠을 우리 아기.

이제 또 다른 사랑으로 너를 보호하려하니 이웃에게 그 따뜻함과 포근함을 기억하며 전하는 사람이 되렴.

아픈 이별 씩씩하게 이겨내 주고 있어 정말 고마워 ^^

 

 

  제 생명의 은인 대전둔산점 고미애 원장님.

  꿀 보다 몇 배는 달고 좋았던 모유수유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아이와의 고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신 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이은서 
201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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