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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통곡 후기

아이와 나를 이어준 고마운 끈 - 아이통곡 - 예쁜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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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통곡 작성일19-03-03 15:40 조회7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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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엄마인 ‘나’를 이어준 고마운 끈

- 아이통곡 모유육아상담실 원장 최미정

 

세상에 아름다운 풍경이나 장면이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엄마의 젖을 먹는 아이’의 모습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의 편안한 자세와 젖을 무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보는 이를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오랜 소망도 내 아이에게 젖을 물려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젖을 주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출산 후, 젖을 물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품 안에 내 아이를 안고 행복하게 젖을 먹이고 있습니다. 젖을 문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그저 신기하고 감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내게는 허락되지 않을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데, 그것은 모두 ‘아이통곡 모유육아상담실의 최미정 원장님’덕분입니다.

최미정 원장님의 마법의 손은, 병원도, 나도, 유축기도, 남편도 손 쓸 수 없어 힘들어 하던 나의 삶을 회복 시켰을 뿐만 아니라, 내 아이와 나의 유대감을 끈끈하게 맺는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그 기적적인 이야기를 이곳에 적어 볼까 합니다.

 

아주 작은 가슴(75A)이었던 저는 아이를 낳을 때쯤 큰 가슴(95B)이 되어 있어 젖을 물리는 것이 쉬우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유선이 발달되지 않고, 젖꼭지가 함몰되어 있어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에는 불리하고 힘든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모유수유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초유도 몇 번 먹이지 못하고 젖을 삭혀야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아이에게 젖을 어떻게 물려야 하는지 몰라 당황스러웠고, 그것은 곧 육체적 피곤함을 가져왔으며, 젖을 물리지 못해 먹이기 시작한 분유만 보더라도 이내 절망감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몹시 힘들었습니다. 아마도 초유를 먹이지 못하고 짜 버려야 하는 아픔과 가슴으로부터 오는 육체적 고통이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둘째를 낳게 되면 모유수유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엄마로서의 자격을 만들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첫 애를 키우다 보니 그때의 고통은 이내 저 멀리 사라지고 다짐했던 것들도 아득해져 버렸습니다.

 

2010년 5월 17일, 건강하고 듬직한 아들(3.54Kg)이 태어났습니다. 예정 달수가 지난 44주가 되어서야 세상으로 손을 내민 것입니다. 자연분만을 고집하던 저는 진통 시간마저 기쁨으로 느껴졌습니다. 내 아이는 그런 기쁨을 알기라도 하는 듯, 4시간 반만에 나왔으니 말이지요.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럽던지 닦아도 닦아도 감사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 되는 날, 깜짝 놀랄 일이 생겼습니다. 젖양이 많아 옷이 젖어버리고 또 다시 젖이 차오르기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첫 아이 때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유축기로 초유(60mm)를 담아내는 것도 잠시, 아이가 먹을 양을 제외하고는 빠른 시간 안에 손으로 짜서 버려야 했습니다. 초유를 버려야 하는 고통은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넘치도록 많이 나오는 젖양을 감당하지 못한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첫 아이도 젖을 물리지 못해 가슴이 아팠는데, 둘째마저도 그래야 한다는 현실이 한탄스러웠습니다.

다른 산모들은 젖양이 적어 못 먹이는 아픔을 겪었던 반면에 저는 젖양이 너무 많아 먹이는 것도 문제려니와 잠을 자지 못하고 젖을 계속해서 짜서 버려야 하는 문제에 봉착한 것입니다. 남편은 회사에 육아 휴가를 내고 젖을 짜주고, 마사지를 해주어야 했으며, 아기 돌보기와 집안 청소를 같이 해야만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잠을 잘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도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으로 아기를 돌보고, 몸조리를 해야 하는 시간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물며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역국을 먹으면 젖양이 많아지기 때문에 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음식이었습니다. 다만 젖양을 줄이는 식혜나, 생엿질금 물을 마시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젖양을 줄이는 민간요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누워 잠든 아기의 모습을 지켜보며 훌쩍거리는 저에게 남편이 제안을 했습니다.

“여보, 내게는 아기도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당신이 있어야 아기도 있는 것이니 당신 몸을 생각해 아기에게 젖을 먹이지 말고, 삭히는 것이 어떻겠어?”

라고 말이지요. 그 말을 듣는데, 저를 위한 말인지 앎에도 불구하고 서운하고 아파서 눈물만 주루룩 흐를 뿐이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습니다. 몸이 아프다보니, 첫 아이를 돌볼 수 없었고 회사 다녀와 피곤에 지친 남편을 수발해 줄 수도 없었으며, 이제 막 나온 둘째 아이에게 애정을 줄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병원에서 받는 마사지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가슴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돌처럼 변해갔습니다. 손조차 댈 수 없던 그 순간, 그 하루가 어찌나 길고 아프게 다가오던지 얼마 가지 못해 내 몸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열은 40도 고열에 가슴 전체에 고름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손으로 젖을 짜 내는 작업은 내게도 남편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으며 가족 그 누구도 도와 줄 수가 없었습니다.

종기처럼 커져가서 종국에는 고름으로 곪아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자 겁이 났습니다. 젖에 상처가 난 젖을 아이에게 물려도 되는지 걱정이 된 것입니다. 그래, 다시 병원을 다니기를 몇 차례, 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기가 먹을 젖이니 약을 바를 수도, 수술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렇게 아플 경우에 후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며 아직 유선염이 아니니 젖을 아이에게 먹여도 된다며 저를 달랬습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을 때, 동생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아이통곡”이란 젖마사지 관리사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가슴 마사지를 받는 순간,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아프지도 않고 통증이 가시면서 뭉쳐 있던 젖들이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지쳐있던 나에게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시원하고 좋았습니다.

진료비가 조금 비싸 놀라기는 했지만, 내가 살 것 같았습니다. 또, 남편과 함께 가서 젖마사지를 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니,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손으로 짜내고 나머지는 유축기로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3차례를 받고 나니, 모유를 먹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 한 마디가 얼마나 기쁘고 좋았던지요.

우유병에 젖을 짜서 아이에게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먹일 때마다 30분에서 1시간씩 걸리는 긴 여정이었지만, 아이가 내 젖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몇 번이고 감사함으로 먹였습니다.

 

일주일동안 마사지를 받고 난 후, 최미정 원장님께서 일본에서 사 오신 유두젖꼭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젖꼭지를 유두에 부착시키고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 젖은 함몰형이기 때문에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처음 시도하고 다시 몇 번 시도했지만 아이는 젖을 빨지도 않았고, 힘들다고 보채고 울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마저 포기해야 할까 할 어느 날, 내 아기가 젖을 빨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유두젖꼭지를 부착하고서 젖을 물었지만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그렇게 3주가 지나고 큰 젖꼭지로 교체를 해서 입을 크게 벌려 먹일 수 있도록 턱운동을 시켜주고 다시 시도했습니다. 아이는 젖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처음 3분을 빨았는데, 그때의 느낌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온 몸에 전기가 통하듯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 감사와 기쁨이 섞여 흐르던 눈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신기한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젖을 빨기 시작하자, 가슴의 통증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매일 가야했던 병원과 ‘아이통곡’에 가지 않아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젖을 물자 사라진 통증도 신기했거니와 젖을 물릴 수 없을 것 같았던 긴 터널을 지나, 아이가 젖을 물기 시작한 것도 저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아이에게 젖을 주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젖을 주지 못하고, 아파서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만큼 기쁜 날들의 연속입니다. 제 품 속에 잠든 아기를 볼 때 마다 감사의 말들과 노래가 쏟아집니다.

 

이렇게 나와 아기가 하나 될 수 있도록 사랑의 끈을 연결 시켜 준 분,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젖을 물고 잠을 잘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고 또 첫 아이 때처럼 주사기로 곪은 가슴 속 고름을 짜 내야 할지도 모를 위험하고 무서운 상황을 피하게 해 주신 분, 몇 달이나 젖마사지를 받아야 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한 번씩 무료로 수고를 해 주신 분, 눈물이 자꾸만 나고 포기하려고 할 때 아기에게 얼마나 모유수유가 중요한지 알려 주신 분, 그분은 바로 “아이통곡 모유육아상담실의 최미정 원장님”이십니다.

세상에 내 엄마도 할 수 없었고, 남편도 손 쓸 수 없었고, 과학문명도 어찌 할 수 없던 내 고통을 노련한 손길로 아픔을 사라지게 해 준 최미정 원장님께 뭐라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최미정 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게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을 때

쉴 수 있도록, 고통 잊어버릴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아이 잘 키울게요.”

 

저와 아이를 단단하게 맺어 준 최미정 원장님께 고마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2011. 8. 28. 순천에서 소승화 드림.


예쁜뚱
201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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