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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출산의 고통...사발젖(돌젖)의 비애 - 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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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통곡 작성일19-03-03 14:16 조회5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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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 품 안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열심히 젖을 먹는 아기.
정말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난 엄마가 되어 가는 과정이 남들처럼 아기를 낳고, 그리고 모유 수유를 하면 되겠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또한 임신했을 때 출산교실에서 듣고 배웠던 것들이 많아서 내심 자신 만만해 있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그건 한낱 이론에 불과했을 뿐 그 냉엄한 현실은 내 마음을 타들어가게 만들었다.

모든 일이 예상했던 것과 딱 맞아 떨어지기 힘들듯이, 난 아기를 낳기 위해 유도분만을 시도한지 3박 4일째 되는 날 결국 수술을 해야 했다. 갑자기 결정된 일이었지만, 난 아기에게 젖을 물릴 욕심에 수술 후 회복실에서 젖을 물렸다. 본능적으로 아기들이 빠는 욕구가 있다고 해서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아기는 납작한 내 젖은 물론 젖꼭지를 잘 찾지를 못 했고, 본격적인 모유수유는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 모자동실을 해가면서 젖을 물려보았지만, 부어오른 가슴이 셋째 날 아침에는 딱딱해지고 열이 올라서 모유수유는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가슴 울혈이 심해져서 양배추잎도 붙이고, 연고도 발라봤지만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양배추 두 통을 다 쓴 후에야 가슴 울혈은 가라앉았고, 몸에 고열이 나서 수액을 하루 더 맞아야 하는 악숙환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내 납작한 가슴은 여전히 납작해지고, 딱딱해져서 유두가 위쪽으로 붙어있는 모습이 꼭 남자들 근육같이 보이기까지 했다. 간호과장님 말씀이 내 젖은 일명 사발젖, 돌젖으로 빨리 뭉치고, 딱딱해져서 모유수유 하기 힘든 젖이라고 했다. 그래서 병원 간호과장님이 초유를 손으로 직접 짜서 아가한테 먹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 딱딱한 젖을 손으로 짜는데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아기를 위한다는 생각에 아픔을 참아내야 했다.

그러나, 일은 갈수록 더 태산이었다. 넷째 날부터는 아기가 내 젖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생아실에서 부족한 모유 때문에 분유 보충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아기는 점점 젖병에 길들여졌다. 나도 책을 읽어서 아기가 태어나면 무조건 젖을 물리고, 젖병을 주면 안 된다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갑작스런 수술과 가슴 울혈증상 때문에 거기까지 신경을 못 쓴 것이다. 결국 유두 보호기까지 써서 시도해봤지만 그것도 잘 안 되었고, 유축기를 사용해서 먹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잠시 조리원으로 들어간 지 며칠 만에 소아과 선생님으로부터 아기 체중이 많이 줄어서 모유수유를 고집하기 보다는 분유로 혼합 수유를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젖양이 부족한데도 엄마가 계속 모유수유를 고집하면 아기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기 낳을 때도 내 맘대로 안 되더니, 수유하는 것마저 내 예상을 빗나가자 내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져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아기는 여전히 내 젖을 완강하게 거부했고, 그런 아기를 보면서 야속하게 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3시간마다 유축기로 짜서 먹이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이렇게 혼합수유를 하다 보니 아기의 체중은 점차 늘기 시작했다. 결국, 조리원 나오기 사흘 전에 마지막으로 모유수유를 시도해봐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마지막 방법인 굶기기 작전을 해봤다. 결국 반나절 만에 아기는 울다 지친 나머지 내 젖을 물었고, 난 모유수유를 성공했다고 의기양양해서 조리원에서 나왔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은 모유수유와의 설전. 한 달이 되어 소아과를 찾았는데 여전히 아기 체중이 많이 안 늘었다면서 분유 보충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시작된 모유수유대 분유 보충의 대결. 처음에는 분유 보충을 매회 40cc 적은 양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그 양이 늘어나서 60cc도 적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더 이상 답은 안 나오고, 이러다가는 모유는 못 먹일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더군다나 아기가 점점 쉽게 나오는 젖병에만 익숙해져서 내 젖을 빠는 힘이 약해져 간다는 게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나에게 그 매듭을 풀 열쇠를 제시해 준 곳이 아이 통곡이었다. 같은 아파트 친구가 놀러왔는데 내가 아기와 힘겹게 모유수유 하는 모습을 보더니 아이통곡을 권해주었다.

아이 통곡 방문 첫날. 김영미 원장님의 신의 손놀림을 받고 나자 난 타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거의 두 달 가까이 모유수유 때문에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었던 나에게 아기 통곡은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메마른 땅에 단비처럼 느껴졌다.

왜 이제야 여기를 찾았는지 아기에게 미안한 생각만 들 뿐이었다. 마사지 받는 내내 나의 사출은 끊일 줄을 몰랐고, 유룬 주변과 유두가 부드러워지고, 젖은 젤리처럼 말랑말랑 해져서 아기가 젖을 물고 빠는데 수월하도록 되었다. 그리고, 보충은 젖병 보다는 모유생성 유도기를 착용해서 점차 그 양을 줄이기로 했다.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또 한 번 마사지를 받고 나니 가슴은 한층 더 부드러워져서 아기가 수유 내내 징징 거리지도 않고, 수월하게 수유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이 통곡으로 출근 도장을 찍고 하루 종일 있으면서 수유지도를 받고, 아기의 수유양을 체크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주일이 지난 뒤에 더이상 모유 생성 유도기를 안써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았다. 지금까지 울면서 수유했던 지난 날듯이 영화 필름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면서내 자신이 대견하게 까지 느껴졌다.

솔직히 지금도 통곡 마사지라고 하면 갸우뚱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더군다나 예전 분들은 옛날에는 그런 것 없이 애들 잘 키웠는데 유난 떠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와 아기에게 맞는 수유지도와 상담이 병행될 때만이 모유수유는 성공할 수 밖에 없다. 나처럼 이것 저것 다 해보다가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 아니라, 임신했을 때부터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출산과 동시에 병행되어야 할 과정으로 본다.

제 2의 출산의 고통이라고 여겨질 만큼 힘든 젖몸살. 그리고, 남들보다 작고 납작하고, 치밀한 유선 조직을 가진 사발젖의 비애는 통곡 마사지를 통해서 씻은듯이 사라져버렸다. 사람의 얼굴 생김이 다 다르듯이 가슴 또한 다 다른 것처럼 각각의 특징일 파악하고 쪽집게 처럼 말끔하게 해결해주신 김영미 원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이제 나도 아이 통곡 매니아(?)로서 주변 수유부들에게 많이 많이 권장하련다. 이제 아이 통곡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아이 통곡이여 영원하라!!!


201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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